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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노동] 근로자의 작업중지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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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23. 07. 21. |
[노동] 근로자의 작업중지권
김장식 변호사
1. 들어가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근로현장에서의 산업재해 발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근로자의 작업중지권은 쇼윈도 속의 장식물처럼 법전 속의 권리로만 인식돼 온 측면이 있었습니다. 이에 상대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근로자의 작업중지권 행사에 관한 논의는 매우 부족해 보입니다. 아래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이 규정하고 있는 작업중지권의 내용을 알아보고 관련되는 몇 가지 논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2. 근로자의 작업중지권
가. 의의
근로자의 작업중지권은 산업재해의 발생 위험이 있는 경우 근로자 스스로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산업안전보건법 제52조). 이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즉시 작업을 중지시키고 근로자를 작업 장소에서 대피시키는 등 안전 및 보건에 관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하는 사업주의 작업중지 의무(산업안전보건법 제51조)와 구분되고, 사업주가 사업장의 건설물 또는 그 부속건설물 및 기계·기구·설비·원재료에 대해 안전 및 보건에 관해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아 근로자에게 현저한 유해·위험이 초래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때 고용노동부 장관이 우선 해당 기계·설비 등에 대해 사용중지·대체·제거 또는 시설의 개선, 그 밖에 안전 및 보건에 관해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필요한 조치를 명하고, 사업주가 이를 이행하지 않아 유해·위험 상태가 해소 또는 개선되지 아니하거나 근로자에 대한 유해·위험이 현저히 높아질 우려가 있는 경우에 고용노동부 장관이 해당 기계·설비 등과 관련된 작업의 전부 또는 일부의 중지를 명하는 것(산업안전보건법 제53조)과도 구분됩니다.
근로자에게 위와 같은 작업중지권을 보장함에 있어서 항상 고려돼야 하는 점은 작업중지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만으로 근로자가 사용자로부터 불리한 처우를 받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작업중지권은 근로자의 생명과 신체 안전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므로, 이를 인정하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155호 산업안전·보건협약 13조가 이를 인정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작업중지권을 통한 권리 행사는 사업주의 이해관계와 상충될 가능성이 존재하고, 이에 따른 불이익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입니다. 따라서 근로자의 작업중지권에 관한 논의들은 이와 같은 불이익에 대한 우려를 제거해 근로자들이 보다 쉽게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함에 우선순위를 둬야 할 것입니다.
나. 인정 요건
앞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산업안전보건법 제56조 제1항은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따라서 근로자의 작업중지권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①산업재해의 발생 가능성이 있어야 하고 ②그러한 산업재해의 발생 위험성이 급박한 것이어야 합니다.
여기서 산업재해는 산업안전보건법 제2조 제1호에 규정된 산업재해와 동일한 것인데, 이러한 산업재해는 작업중지권을 행사하려는 근로자 자신에게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거나 또는 다른 근로자를 포함한 제삼자에게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거나를 불문합니다. 산업재해의 발생 가능성은 물리적·화학적·생물학적·공학적인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뿐만 아니라, 통상의 근로자라면 특정 작업환경에서 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산업재해가 발생할 위험은 급박한 위험이어야 하는데, 여기서 급박한 위험이란 산업재해의 발생이 임박한 상황을 말하는 것이므로 급박한 위험이 아닌 통상적인 위험인 경우엔 작업중지권을 바로 행사할 수 없고, 먼저 사용자에게 안전배려의무의 이행을 청구하거나 안전배려의무에 위반하는 행위의 중지를 요구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재해 발생의 위험성이 제거되지 않는 경우에는 최후의 수단으로 근로자는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와 같은 이유를 원인으로 최후 수단성이 지나치게 강조돼서는 안 됩니다.
근로자가 위와 같은 작업중지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결국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문제될 수밖에 없는바, 당연히 그와 같은 상황을 인식하는 근로자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견해와 작업중지권 행사 당시 상황을 객관적 판단해야 한다는 객관설의 대립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안전보건법은 제52조 제4항에서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근로자가 믿을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때에는 제1항에 따라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근로자에 대해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해, 산업안전보건법상으로는 주관설의 입장을 채택했습니다. 이는 타당한 입법 태도라고 보입니다. 다만,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근로자가 믿을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때'에 관한 입증책임이 문제될 수 있는바, 이러한 경우라면 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하고자 하는 사용자에게 입증책임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이는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 해고 등의 제한에서 정당한 이유의 입증책임이 사용자에게 있는 것과 동일하게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근로자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어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경우에는 지체 없이 그 사실을 관리감독자 또는 그 밖에 부서의 장(관리감독자 등)에게 보고해야 하고(법 제52조 제2항), 관리감독자 등이 위 보고를 받으면 안전 및 보건에 관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합니다(법 제52조 제3항). 즉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경우에 있어서 근로자의 즉시 보고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것인데, 이러한 보고의무의 성격이 문제될 여지도 있습니다. 법률의 규정에 의해 보고의무가 있는 것은 분명하나, 이를 위반했다고 해서 작업중지권 행사 그 자체를 위법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다만 보고의무 역시 근로자에게 부여된 법적의무인 것은 틀림 없으므로, 그와 같은 보고의무 자체를 위반한 것에 따른 징계책임 등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나. 효과
근로자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결과,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근로자가 믿을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때에는 사업주가 근로자에 대해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됩니다(법 제52조 제4항). 이러한 규정은 법 제52조 제1항의 규정과 연계해 법령에 의한 행위로서 정당행위의 위법성 조각사유에 해당합니다. 그 결과, 근로자는 형사책임이나 민사책임뿐만 아니라 사용자에 대한 징계책임 등도 지지 않습니다.
반면에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근로자가 믿을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도 바로 위법하다고 평가돼서는 안 됩니다. 비록 합리적 근거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라 하더라도 형법 제22조나 민법 제761조 제2항의 긴급피난 법리가 적용될 여지는 남아 있는 것이고, 산업안전보건법 제52조 제4항이 이러한 규정의 적용까지 배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 단체교섭
작업중지권 행사와 관련해 노동조합이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경우 사용자의 단체교섭의무가 발생하는지 여부가 문제되기도 합니다. 사용자가 단체교섭의무를 부담하는 의무적 교섭사항은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과 그 밖에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위해 필요한 노동조합의 활동이나 단체교섭의 절차와 방식, 단체협약의 체결 등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그 밖의 노동관계에 관한 사항이고, 근로자의 작업중지권은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므로 단체교섭의 대상으로 인정되는 것에 별다른 이견이 없습니다.
2021. 8. 31.자 중앙일보 등 언론보도에 의하면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2021. 3.경 작업중지권리 선포식을 한 이후 월평균 360여 건의 작업중지권 행사가 이뤄졌다고 하고, 회사는 이를 장려하기 위해 우수제보자 포상 등 인센티브를 제공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있는 현실에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 이행의 하나로 평가될 여지도 충분합니다.
3. 결론
지금까지 근로자의 작업중지권은 제도상으로만 존재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 위험이 예측되는 경우 제도로서의 작업중지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본능에 의해 위험을 회피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근로자가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작업중지권을 행사함에 예측하지 못하는 위험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법상 마련된 제도를 다른 부정한 의도로 남용하는 것은 마땅히 경계해야 할 것이지만, 작업중지권은 근로자 스스로 생명·신체에 대한 위험으로부터 안전을 도모할 수 있게 하는 권리인 것이므로 근로자들이 그러한 권리를 보다 쉽게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의 취지를 설명하고 알리는 것이 우리의 당연한 임무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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