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_지식재산권_제15호_나의 소송이야기(2)]
상표 라이센스 계약의 일방적 해지통보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
윤복남 변호사
상표 전용사용권 계약 체결과 해지통보
한국의 고급 여성의류 브랜드 B사는 중국시장을 개척하되, 직접 진출이 아닌 제휴방식을 택했다. 그에 따라 중국 북경에 소재한 중견 의류생산업체 A사에게 한국에서 꽤 알려진 자신의 여성의류 브랜드에 관해 중국 내 5년간 상표 전용사용권 계약을 체결하였다. A사는 계약체결 2년만에 중국 내 주요백화점 수십군데에 해당 브랜드 매장을 개설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냈다. 그런데, B사는 갑자기 A사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하고, 중국 백화점에도 상표사용 중지 및 매장철수를 통고하였다. A사는 갑작스런 계약해지 통보로 인하여 20억원 상당의 재고품을 팔지 못하였다면서 B사를 상대로 한국 법원에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 사건의 쟁점은 크게 2가지였다. 첫째, B사의 계약해지가 인정될 것인가, 둘째, 손해액이 얼마인가.
계약해지의 인정 여부
B사가 계약해지 통보에서 문제 삼은 A사의 계약위반 사항은 A사가 B사의 상품디자인을 일부 카피하여 다른 브랜드 제품에 사용했다는 점, B사 백화점 매장의 컨셉(기본구도, 가구배치, 색상 등)과 마네킹, 옷걸이, 집기 등을 A사 다른 브랜드 매장에 전용한 점, 로열티 대금 일부를 지연 지급한 점 등이었다.
그런데, 한가지 주목할 점은 최초 계약해지 통보서에서는 이러한 사항 외에도 (1) 추후에는 디자인 제공방식이 아니라 완성품 구매방식으로 변경하고, (2) 로열티를 기존 매출 기준 3%에서 8%로 인상하되, 이를 10일 이내에 수용하지 않으면 계약해지 의사로 간주하겠다고 기재했다.
법원에서는 위 두 가지 사유를 구별해서 보았다. 즉, 앞서의 디자인 카피나 매장 컨셉의 전용 등은 계약위반에 해당되나, 일방적으로 구매방식을 변경하거나, 로열티를 인상하겠다는 통보는 당사자간 합의가 안된 내용이라서 계약해지의 사유로 삼을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한편, 상표 라이센스 계약서에 따르면 30일간의 시정기간을 두고 해지를 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B사는 이 기간을 지키지 않았다. 첫 해지통보 후 2주만에 최종 해지통보를 하고, 곧바로 중국 백화점에도 상표사용 금지 및 매장철수를 통보해 버렸다. 법원은 이에 대해 B사가 계약서상의 해지절차를 지키지 못했으므로 이는 해지로서의 적법한 효력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손해배상액의 산정
다른 중요한 쟁점은 손해배상액에 있었다. A사에는 20억원 가량의 재고품이 남아있었는데, 계약서에 따르면 재고품은 재고목록을 만들어 상표권자에게 통보한 후 라벨을 떼고 해지 후 6개월 내에 판매해야 했다. 그런데, 고급여성 의류를 라벨을 떼고 판매할 경우 그야말로 땡처리에 불과하여 도저히 제값을 받을 수 없었고, 이미 B사의 통보로 인해 백화점 매장이 모두 철수하여 현실적으로 판매도 불가능했다.
A사측은 소 제기시 북경 회계사 사무소를 통해 남은 계약기간(약 3년)의 추정영업이익을 계산해서 증거로 제출했다. 기존의 매출액 추이를 적용하여 향후 3년간의 예상이익이 얼마인지를 산정하여 이를 현재가치로 환원한 8억원 가량 및 재고상품가액 22억원 합계 약 30억원을 손해액으로 산정하였다.
그러나, 법원은 추정 영업이익에 대해서는 법원이 지정한 감정인(한국회계법인)을 통해 인정된 5억원 가량만 인정했고, 재고자산에 대해서는 손해로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법원은 재고자산은 A사에 귀속되는데 이를 판매함에 따른 A사의 영업이익을 손해액으로 하는 것과 양립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소송 뒷이야기
이미 짐작하겠지만 위 소송에서 필자는 A사를 대리하였다. 소송 도중 2차례의 화해권고가 있었으나 결렬되었고, A사가 위 소송 전에 중국 북경법원에 계약이행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이 문제되어 중복소송 여부도 논란이 되었다(본 판결에서는 외국 소송은 대한민국에 계속 중인 소송이 아니므로 중복소송이 아니라고 판시하였다). 그런데, A사 입장에서는 재고품 손해를 인정받지 못하자, 상당히 과소한 손해액만 인정되었고, 거기에 더해 재판 도중 B사가 부도처리되는 바람에 A사는 결과적으로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상표 라이센스 계약에서 중도해지시 재고품을 어떻게 처리할지, 재고목록으로 보고된 품목에 한해 판매한다면, 기존 상표의 라벨을 달고 파는 것까지 허용하는지가 중요하고, 상표권자와 사용권자 양자의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린다는 것을 가르쳐 준 사건이었다. 아울러 중국에서는 회의시간에 커피조차도 계속 잔을 채워주므로(添盞) 함부로 마셨다가는 카페인 과다섭취의 우려가 있다는 문화적 차이도 체험하게 해 준 사건이었다.